참 다행이다~
글 : 박영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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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기억력이 점점 이상하다는 느낌을 3~4년 전부터 받기 시작했습니다. 물건 둔 곳을 기억하지 못해 찾아 헤매는 경우도 점점 많이 생기고 매일 다니시던 시장에서 집까지 오는 길이 갑자기 생각나지 않아 찾아오는데 식은땀을 흘렸다는 이야기를 하실 때 ‘좀 심각하게 생각해야 하나’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7년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다니시던 수영을 안 가겠다고 화를 내면서 전화를 하셨습니다. 왜 그러냐고 물으니 “이 사람들이 나를 이젠 막 무시하는데 여자들이 전부 나를 이상하게 보고 수군거려서 기분 나빠 이젠 안 갈 거다!” 하시며 역정을 내셨습니다. 다시는 수영장에 안 간다고 하시면서 너무 속상해 하시길래 왜 그러나 싶어 알아보니 엄마가 수영복을 안 입고 수영장으로 가는 경우도 종종 발생했고 매일 수영복을 갈아입던 로커를 못 찾는 경우, 가방을 잃어버리는 경우, 수영장 입구를 잘못 찾는 경우 등이 너무 많이 일어나 주위 분들이 이상하다고 수군거린 게 발단이 된듯했습니다.
그 사건 이후 엄마는 수영장에 발길을 끊으셨고 그와 동시에 많은 기억을 놓기 시작하셨습니다. 가끔 찾아뵙거나 통화를 해보면 잘 지낸다고 하시기에 통화상으로는 별문제가 없는 것 같아 잘 지내고 계시겠지 생각했습니다. 가끔 통화를 하다 보면 내가 만지면 밥솥이 고장 난다, 전자레인지가 자꾸 고장 난다, 하시던 이야기도 그냥 그런가 보다 하면서 잘 지내시는 줄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밤 2시경에 엄마 집 근처 치안센터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엄마가 밤에 길을 잃어 헤매던 중 112로 집을 못 찾겠다고 전화를 하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급하게 치안센터로 가니 엄마는 너무 마른 상태로 “빵을 하나 사려고 나와 빵을 사서 집으로 가려고 하니까 아무리 찾아도 집을 못 찾겠더라. 그래서 아차 싶어 주머니에 있던 핸드폰으로 112로 신고했다”라며 놀란 가슴을 쓰다듬고 계셨습니다. 경찰분께서는 다행히 어르신이 112로 신고를 하셔서 찾을 수 있었다며 조심하셔야 할 것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엄마를 모시고 댁으로 가니 음식을 해 드신 흔적이 없었습니다. 가끔 배고프면 밖에 나가 사 먹을 때가 많고 해 먹으려고 해도 밥통이 자꾸 고장 나고 불도 겁나고 음식을 하려고 해도 무얼 넣었는지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머릿속이 자꾸 새까매져 아무 생각이 안 난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녁에 배가 고파 빵을 사러 나갔다가 집을 못 찾았다고 하시면서 내가 왜 이렇게 등신이 됐는지 모르겠다며 눈물을 글썽이셨습니다. 그동안 자식들이 걱정할까봐 전화로는 ‘괜찮다, 괜찮다’ 말씀만 하셨고 실은 혼자서 깜깜해지는 머릿속을 부여잡고 어떻게든 생활해보려고 안간힘을 쓰셨던 것이었습니다. 그동안 고군분투했을 엄마를 생각하니 너무 죄송하고 마음이 아파 새벽이 다 되어 가는 그날 엄마를 모시고 집으로 왔습니다.
그렇게 엄마를 집으로 모신 뒤, 엄마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하는 저도 막막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치매 어르신을 위한 장기요양보험 제도가 있다는 걸 TV 광고에서 본 것 같아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 문의를 하니 제도에 대해 안내를 해주셔서 장기요양인정 신청을 했고 일주일 후에 공단 직원분이 나오셔서 엄마의 건강상태를 확인하셨습니다. 의사소견서를 제출한 뒤 2주 후에 등급 판정이 나오면 그때 다시 안내를 받으셔서 어머니께 맞는 서비스를 이용하시면 될 거라는 친절한 설명도 덧붙여주셨습니다.
그 후 엄마는 등급 판정을 받았고 공단에서 간단한 교육을 받은 뒤 인정서를 받아 가라는 연락이 왔습니다. 엄마는 5등급 판정을 받으셨는데, 엄마의 인정서를 받아들고는 ‘아, 엄마가 정말 치매구나’라는 생각에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뒤로 지인이 아는 센터에 가서 프로그램과 요양보호사에 관한 소개를 받았고, 그렇게 엄마는 장기요양보험 제도 안에서의 생활을 시작하셨습니다. 사위 눈치 보인다고 당신 집으로 가시겠다고 하셔서 엄마 집으로 요양보호사가 방문하며 일상생활을 시작하시게 되셨습니다. 요양보호사의 전문적인 케어를 받으며 엄마의 몸 상태도 많이 회복됐고 얼굴에도 생기를 되찾으셨습니다. 요양보호사와 함께 짠 거라며 삐뚤삐뚤한 뜨개질로 수세미도 짜서는 선물이라고 주기도 하셨습니다. 어떻게 이리 좋은 사람이 와서 날 도와주는지 너무 고맙다고 이야기하시며 소녀 같은 웃음을 보이셨습니다.
하지만 가끔 밤에 불쑥 나가셔서 종종 집을 못 찾는 경우가 생겼습니다. 다행히 주변 이웃들의 눈에 띄어 집으로 모셔올 수 있었지만, 집을 못 찾고 헤매는 상황이 반복돼 혼자 생활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거의 평생을 지냈던 동네를 떠나 부끄럽게 사위와 어떻게 사냐고 한사코 거절하셨지만, 당신께서도 한계를 느끼셨는지 곧 수긍하셨습니다. 그렇게 우리 집에서 생활하게 되셨지만, 엄마에겐 또 다른 문제가 있었습니다.
아파트 생활은 한 번도 안 해보신지라 보호자 없이는 단 한 걸음도 밖에 못 나가셨고 혼자서는 식사며 화장실도 잘 못 찾으셨습니다. 특히 요양보호사가 다녀간 뒤로는 혼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셨습니다. 그때 센터장님이 주간보호센터라는 곳을 소개해주셨고 우리 부부가 출근해도 요양보호사의 케어를 받을 수 있다고 안내해주셔서 굉장히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주간보호센터를 찾아보니 주변에 많은 센터가 있었습니다. 다행히 집 근처 가까운 곳에 센터가 있어 시설이며 운영 전반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뒤, 엄마께는 노인대학인데 친구들도 있고 재미있는 것도 많이 배울 수 있는 곳이니까 한번 다녀보자고 말씀드리면서 싫으면 안 가셔도 된다고 이야기하니 “뭐 노인대학이니 다녀보면 뭘 배워도 배우겠지!” 하시며 다녀보겠다고 하셨습니다.
다음 날 아침, 센터에서 운영하는 차로 엄마를 모시러 왔고 센터에 다녀오신 후 “오늘 센터는 어떠셨어요? 재밌었어요?”라고 물으면 “아이고 참 재미지더라. 노래도 부르고 새로 왔다고 인사도 하고 박수도 치고 사람들도 다 친절하니 참 좋더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더니 밝은 표정으로 “인자 거기 다니면 되겠더라. 사람들이 어찌 친절한지...”라고 하시며 만족해하시는 걸 보니 마음이 놓였습니다.
요즘도 아침에 일어나시면 묻습니다.
“오늘도 가나?”
“예, 오늘도 가서 놀다 오셔야지요”라고 하면 “그래 놀다 와야지”라고 말씀하십니다. 한번은 센터 선생님들이 손톱에 분홍빛 매니큐어를 발라주셨다고 하시면서 난생처음 이렇게 바르니 이상하다고 하시며 수줍어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니 저도 참 나쁜 딸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늦게나마 이런 제도 안에서 엄마를 편히 모실 수 있어 마음이 참 푸근해집니다. 잘 알고 잘 활용하면 너무 편하고 즐겁게 생활할 수 있는데 엄마를 신경 못 쓰고 지냈던 날들이 생각나 죄송한 마음이 들었지만, 지금이라도 이런 좋은 제도가 있다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하루하루 감사한 마음을 새깁니다.
요즘 유래에 없던 코로나19 사태로 며칠 집에 계시게 했더니 머릿속이 더 까맣게 변한다고 왜 센터에 못 가느냐고 하시는 엄마. 이해도 잘 안 되니 더 답답해하시는 것 같아 마스크를 꼭 쓰고 손도 자주 씻으면서 다시 다니자고 말씀드리니 무척 좋아하셨습니다. 센터에서도 손을 얼마나 자주 씻으라고 하는지 뽀득뽀득 손이 뭉개지게 씻는다고 하시는 말씀에 웃음이 나왔습니다.
오늘도 엄마는 아침에 일어나 물으십니다.
“오늘도 가나?”
“예, 갑니다. 준비하세요.”
엄마는 모든 행동이 처음인 것처럼 갈피를 못 잡으시지만 밝은 표정으로 센터에 갈 준비를 하십니다. 그 모습에 ‘참 다행이다. 이렇게 감사하게 모실 수 있어서’라는 마음을 다시금 되새깁니다. 기억은 아련하게 사라지고 있지만, 엄마의 기억에 참 재밌고 좋은 사람들과 함께했던 행복한 순간으로 남았으면 하고 바라봅니다.
노인장기요양보험 제도가 아니었다면 마음이 아프지만, 현실을 핑계 삼아 요양병원으로 모셨을 것이고 그랬다면 엄마는 자신이 버려졌다는 기억을 가졌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렇게 유용하고 좋은 제도 속에서 엄마의 기억을 잡아둘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라고 다시 한 번 되뇌어봅니다. 그래서 참 감사합니다.
출처: <노인장기요양보험 웹진 2021년 1월호>